H. G. Underwood의 1885년 우리 조선 땅에 도착 기도문!

2009. 3. 21. 21:08福音의 散策

 

 

 

 

주여, 조선이

은총의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 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트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

을 줄 믿나이다.

...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


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


라의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슴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에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H. G. Underwood

 

1859년영국출생 미국에서1885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한국에서 만난 선교사 릴리아스와1888년 결혼했다. 성경번역,고아원,학교건립,찬송가편찬등 한국교회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1859.7.19~1916.10.12]

요약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한국 광혜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으며 서울 새문안교회와 기독교서회를 세웠다.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고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다.

국적 미국

활동분야 종교·교육

출생지 영국 런던

주요저서 《말본》 《한국어 소사전》(1890), 《한국선교 23년》(1908)

↑ 선교100주년 기념탑 /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가 선교를 위해 인천에 들어온지 100년을 기념하는 조형물.

본문

한국명 원두우(元杜尤). 런던 출생. 1881년 뉴욕대학교를, 1884년 뉴브런즈윅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885년 H.G.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와서 광혜원(廣惠院)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다. 1887년 벽지전도부터 시작하고,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으며, 1889년에는 기독교서회(基督敎書會)를 창설하였다.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 그 회장 등을 역임하며 성서의 번역사업을 주관하는 한편, 1890년에 《한영사전》 《영한사전》을 출판하고, 1897년에는 주간지 《그리스도신문》도 창간하였다.

1900년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으며, 1915년에는 경신학교(儆新學校)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다. 1916년 신병으로 귀국, 애틀랜틱시티에서 죽었다.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에 《말본》 《한국어 소사전 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1890), 《한국선교 23년 For Twenty-three Years, a Missionary in Korea》(1908) 등이 있다.